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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나라 시각장애아 교육의 발달_조선시대
작성자 김나리 작성일 2014-02-26 오후 5:49:16 조회수 3688

  ◈ 선초의 맹인 점복업      

  조선시대에는 숭유배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도교 포함)를 배척하였기 때문에 맹승들은 천인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한 고려 때의 10학이 6학으로 축소됨에 따라 풍수음양학이 관학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태종 6년 (1406)에는 6학이 다시 10학으로 확대되면서 음양풍수학이 다시 포함되었다.      

  세종 20년(1438)에는 음양풍수학을 천문학ㆍ풍수학ㆍ음양학으로 분화시켰고(세종실록 권38, 세종 20년 10월 계조모), 세조 12년(1466)에는 풍수학은 지리학으로, 음양학은 명과학(命課學)으로 개칭되었다(세종실록, 권38,세조12년 정월 무오조). 이 명과학은 맹인들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인 동시에 직업이었다.      

  세종 27년(1445)에는 젊고 영리한 맹인 10명을 선발하고 훈도 4~5명을 두어 3일에 한번씩 서운관(書雲觀: 후에 관상감이라 함)에 모여 그 업을 익히게 하였다(세종실록 권 107, 세종 27년 3월 무오조). 이로써 맹인들에게 점복교육이 시작되었고, 이 제도는 갑오경장(1894)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때의 교과목은 원천강(袁天鋼), 서자평(徐子平), 응천가(應天歌), 범위수(範圍數), 극택통서(剋澤通書), 삼진통재(三辰通載), 대정수(大定數), 육임(六壬), 오행정기(五行精記), 자미수(紫微數), 현여자평(玄與子平), 난대묘선(蘭臺妙選), 성명총화(星命摠話)이었는데(경국대전 권3, 예전 취재조), 이들은 모두 명과학에 관한 서적이었다.      

  맹인들은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을 했는데 일월식술자(日月蝕術者) 한명, 명과맹인(命課猛人) 두명이 관상감에서 근무하였다. 조선시대 유명한 맹승으로 유담(柳湛: 호조전서: 정3품)과 지화(池和: 중훈검교첨지내시부사:종3품)가 벼슬을 받았고(세종실록 권 75, 세종 18년 10월 정묘조), 민간인 맹인 점복자로는 홍계관(洪繼官), 유은태, 구진주 등이 있었는데 특히 홍계관의 이름이 온나라에 알려져 그의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그가 사는 마을을‘홍계관 리’라고 하였다.(민족문화추진회편, 1985)      

    

  ◈ 조선시대- 중기이후의 맹인 점복업  

  조선 중기 이후 많은 양반 계급의 맹인들이 점복업에 진출하면서 매복맹인(賣卜盲人)의 신분제도에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맹인 신경달(申敬達)이 중심이 되어 노력한 결과 양반 맹인들이 매복업(賣卜業)에 종사할 경우에 그들 본래의 양반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맹인들은 도가(道家)에서 유가(儒家)로 전향함으로써 신분 상승을 시도하였는데, 그 동기로는 ① 도교의 쇠퇴 ② 매복맹인에 대한 사회적 천시 ③ 도교의 총본산인 소격서의 철폐 ④ 유교의 학문적 영향 들을 들 수 있다.(임안수,1986)  

  조선시대 맹인들이 모이던 집회소로는 선초에 명통사(明通寺)가 있었는데 이 명통사는 한양 5부의 맹인들이 모이던 집회소이고, 맹인들이 나라를 위하여 기우제를 올리고, 그 대가로 매년 쌀 30섬과 콩 20섬을 받았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맹청이 설립되었는데 이는 영희전 근처(현재 서울시 중구 저동)에 있었고, 나라에서는 그 책임자에게 ‘지중추’라는 벼슬을 주었으며 맹인들이 모여 점복업을 발전시켰으나 1907년에 폐지되었다.  

   

  ◈ 관현맹인  

  세종 초에는 관습도감에 맹인 18명을 입속시키고 음악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관현맹인(管絃盲人) 제도를 설치했는데, 이 관현맹인은 궁중 내연(內宴)에서 관협합주(管絃合奏)나 가무반주(歌舞伴奏)를 맡았던 특수한 맹인 음악인들이다(장사훈,1982).   

  이러한 맹인 음악인들을 두었던 이유로는 첫째, 내외법이 엄격했던 그 당시 여자들만이 있는 궁중 내연에 보는 악공(樂工)들이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앞 못보는 맹인들에게 궁중에서 연주하게 했다. 둘째, 광습도감의 창기가 사죽(絲竹)과 장고를 배우지 못하였을 때, 궁중의 잔치와 제향 때, 관현맹인에게 임시로 반주를 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현맹인제도는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이 때의 훌륭한 맹인 음악인으로는 이반, 이마지, 김복산 등이 있었는데, 특히 이마지의 음악은 참으로 절예(絶藝)여서 그가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법에 따라 거문고를 연주했다.  

  

  [참고문헌] 임안수(2005), 「시각장애아 교육」, 대구 : 도서출판 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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